늘 항상 이런 곳만 있었던 건 아니다.
폐허 같은 곳도 있었었고, 수많은 빈대들과 함께 자는 날도 허다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배에는 빈대들의 발자국이 먼저 느껴진다.
이 빈대들이 배의 반대 방향으로 이사를 가다 배가 고파 나의 살점을 파 먹었나 싶은 마냥
붉은 반점들이 배를 가로 질러 선명한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 날도 허다 했다. 물론 가려움은 덤이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가려우면 긁으면 그만이고 딱지 조금 앉으면 그만이다.
이 생활이 익숙해 지기 시작한 뒤로 이런 아주 사소한 것들은 눈 밖으로 날려 버린 지 오래 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살짝 되었다. 이 생활이 벌써 익숙해져버린걸까?
또 아무런 의미 없이 기계적으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단순히 걷고 힘들면 또 쉬고, 그게 이전의 일상처럼 되어 버리면 그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곤 자신만의 해답을 찾았을 것이다.
바라보는 풍경은 누구에게나 같을 수 있지만 느끼는 건 누구나 다 다를 것이다.
걷고, 느끼고, 바라보고, 사람이 어디의 자리에서건 똑 같이 익숙해 지겠지만
그 익숙함의 경계를 넘어 서야 했다. 그리고 그것만은 받아 들여야 했다.
지난 몇 년간 난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고만고만한 무리의 틈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항상 익숙한 그 자리에 머물러만 있었다.
그 동안 난 나의 잣대가 아닌 타인의 잣대로 세상의 기준을 만들었다.
한동안은 익숙한 그 자리에 미련이 남아 그렇게 악착같이 버텼었고,
이게 아니다 싶어도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앞으로, 앞으로만 열심히 내 달렸다.
뒤쳐지면 쓰러진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들로 세상은, 아니 내가 나를 철저히 속여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뒤쳐지는 것 보다 소중한 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걸 잊게 만들어 버렸다.
그저 돈벌이에만 치중하고, 남들보다 더 앞서 나가려고 애를 쓰다 정말 지쳐버렸을 무렵에는
정말 빈 껍데기, 만신창이가 된 것 만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 안락함과 그 익숙함을 버리라고는 차마 나에게 말하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다. 두려웠다. 어느 날 지나온 날들이 문득 생각났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익숙함에 파 묻혀 살든지, 아님 떠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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