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08년 그 무더웠던 6월의 어느날. 난 그전에 보았던 책 속의 구절을 떠올리며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종교적인 의미는 없었다. 단지 그 다짐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산티아고를 알게 된건 2006년즈음 파울로 코열료의 "순례자"라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언전가 꼭 가보리라 다짐을 했고, 그 다짐이 기억에서 희미해져 갈 2008년
봄 우연히 잡지에서 산티아고 기사가 보게 되었다.
잡지를 보는 동안 몇 해 전의 그 다짐이 다시 떠올랐고, 더 이상 미룰것 없이 그 다짐을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지금도 이때의 선택엔 후회없다.
그리고 2016년이 된 지금도 그날의 일들이 하나하나 잊혀지지 않는다.
SANTIAGO DE COMPOSTELA
마찬가지로 기독교 탄생 이후 첫 천 년 동안 세 개의 신성한 순례길이 존재했고.
누구든 그곳 중 하나를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축복과 관용이 베풀어졌어.
첫 번째 길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었고.
그 상징은 십자가 이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로마의 방랑자'라고 불렸어.
두 번째 길은 예루살렘의 예수의 성묘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수상가'라고 불렸다고 한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그를 맞아준 이들이
흔들었다는 종려나무 가지가 그 길의 상징이기 때문이지.
세 번째 길은 이베리아 반도에 묻힌 사도 야고보의 성 유골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 곳은 어느 날 밤 양치기가 들판 위에서 빛나는 별을 봤다는 장소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후
성 야고보와 성모마리아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복음서의 말씀을 가지고 그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곳에는 콤포스텔라(별들의 들판)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오래지 않아 모든 기독교도 국가의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도시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 신성한 세 번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는 '순례자'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그들을 가리비 껍데기를 상징으로 선택했다.
순례의 황금시대였던 14세기에는 해마다 전 유럽에서
몰려든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은하수길'을 따라 걸었다.
(밤에는 순례자들이 은하수를 보고 길을 찾아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열성 신자들과 수도사들 그리고 연구가들이 프랑스의 생장페에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에 이르는 칠백 킬로미터의 길을 걸으며 순례를 하고 있다.
1123년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 프랑스 사제 에임리피코 덕분에 오늘날의 순례자들은
중세의 샤를마뉴 대제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
좀더 가까이로는 교황 요한23세가 따라갔던 여정과 같은 길을 갈수 있게 된 것이다.
피고는 자신의 경험을 다섯 권의 책으로 써냈는데, 이는 사도 야고 보의 신봉자인
교황 갈리스토 2세의 업적으로 기록되었고 훗날 '칼릭스티누스 사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피코는 순례길을 따라 걸어가며 알아볼 수 있는 자연의 표지들과 도중에 있는 샘,
숙박을 할 수 있는 수도원, 피신처와 도시들을 열거해 놓았다.
피코의 주해에 기반을 둔'성 야고보의 친구들'수도회에서는 오늘날까지 이 자연 지표들을 보존하고
순례자들을 이끌어 주고 있다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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