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ere i am/심야책방

[책] 데이지의 인생-요시모토 바나나.

반응형

데이지의 인생-요시모토 바나나.

오래 전 요시모토 바나나의 몇몇 작품들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의 느낌으로는 작가 특유의 스산하고, 무겁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있어 보여 좀처럼 적응 하기가 힘들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그때의 그런 느낌은 아직까지도 저의 머리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입견과 이미지는 그의 다음 책을 보기를 주저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보려다가도 내려 놓은 적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만큼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그의 책은 선택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별 기대감 없이 책을 펼쳐 가볍게 읽다 보니 예전의 선입견이 조금은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담담히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한 사람의 추억이, 인생이, 삶이, 우정이, 사랑이, 그렇게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는 일상 속에 감춰진 애잔한 모습과 여전히 감정을 억제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않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이 저려옵니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었지만 그래도 세월은 흘러가고, 남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계속 세월을 따라 흘러가야 하기에 상실의 슬픔도, 그리움도, 절망도, 견디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견디고 견디다 보면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상실감과 절망감은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잊혀져 서서히 멀어져 가고, 남은 사람의 기억에 새겨진 잔상과 온갖 추억들은 삶이 고달플 때 다시 나타나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원래의 제자리로 되 돌아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내 깨닫습니다. 그래도 살아가 진다고.

그 후,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이면에서 그 충격과 비슷한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아무리 평화로운 풍경이라도 그 뒤에는 위태로움이 숨어 있으며, 우리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리낌 없이 웃을 수 있음에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결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그만큼 아주 친절하고 아름다운 예정을 따라 우리는 기적적으로 살아 있으며, 그 예정에서 삐끗 어긋난 경우를 두고 신을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을 일이라 느껴질 만큼 많은 생명이 무사히 이 땅에서 약동하며 살아간다.“

P.S: “그만큼 아주 친절하고 아름다운 예정을 따라 우리는 기적적으로 살아 있다.” 책을 보는 내내 이 구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각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삶의 가장 큰 과정중의 하나가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일입니다.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도 삶의 종착역으로 가는 여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