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가 없어도 인도에 갈 수 있다.
류 시 화
나 또한 슬슬 인도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세상이 자꾸만 날 비현실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올해엔 반드시 인도로 사라지는 거야, 뒷골목으로 말야,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나 난 떠나지 않았다. 자꾸만 미뤘다.
이 지구의 동식물들 중에서 ‘미루는 것’을 발명한 것은 인간뿐이다.
어떤 나무도, 동물도 미루지 않는다. 인간만이 미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편의 충격적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했다.
폴란드의 한 유태인 마을에 신앙심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자식을 키웠으며, 가축들을 돌봤다.
그런데 그들 각자에게 한 가지 공통된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죽기 전에 성지 순례를 한번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여 앉으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올해는 꼭 성지 순례를 다녀와야지. 더 나이 먹기 전에 다녀와야겠어.”
그러면서 그들 각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으면 꼭 가야지.
소가 배가 잔뜩 불러 갖고 있으니 떠날 수가 있어야지.”
“난 신고 갈 구두가 없단 말야. 구두만 사면 더 이상 미루지 않고 꼭 가겠어.”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 난 성지 순례를 가면서 그냥 갈순 없어. 멋진 노래를 부르면서 가야지.
그런데 내 기타가 줄이 끊어졌단 말야. 기타 줄만 갈면 떠나야지.”
그렇게 이유를 대면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성지 순례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군이 마을에 쳐들어왔다.
마을의 유태인들은 모두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야만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발가벗기 운 채 가스실로 향하여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도 난 성지 순례를 떠나지 않았어.
그때 충분히 갈수 있었는데도 가지 않았지.”
“난 구두가 없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지. 고무신을 신고서도 갈 수 있었는데 말야”
음악가는 말했다.”난 기타 핑계를 댔지. 기타 줄이 없으면 성지 순례가 불가능한 것
처럼 말했어. 그냥 노래만 부르면서 갈 수도 있었거든.”
그들은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그들의 말처럼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가스실 문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영화가 끝이 났다. 관객들이 다 나간 뒤에서 나는 한참을 혼자서 앉아 있었다.
영화관을 나온 뒤 난 곧바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고,
1주일 뒤 밤 열두 시에 인도 뭄바이 공항에 내렸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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