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여행은 그런 것이다. 더 잘 내려앉기 위한 것. 그곳으로의 망명이 아니라, 이곳으로의 귀환을 위해서 떠난다. 끊임없이 떠도는 부평초를 꿈꾸지 않는다면 누구나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날 것이다. (어쩌면 떠도는 것이 일상인 부평초로서는 물위에 떠도는 것 자체가 정주(定住)가 아닐까? 떠돎이 일상에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천 리를 주유한들 붙박이 나무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여행은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일이다. 그러나 궁극 그 낯설고 새로운 것들 속으로 나를 의탁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속에서 더욱 낯설 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 위한 일이다. '풍경'과 '너'가 낯이 설수록 '나'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과 '나'는 너무 친숙하여 때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일상이 날마다 새롭고 신기하다면 여행은 시간 낭비일 것이다. 일상이 막혀 있을 때 우리는 떠난다. 무수한 풍경과 사물을 만나지만 궁극 얻어 오는 것은 기념품과 사진이 아니라, 풀잎처럼 활기 있고 멧새처럼 생의(生意)넘치는 자기 자신일 것이다.
P.S 집을 정리하다 오래된 수첩에 적어둔 메모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 옮겨 놓은듯한 필사였습니다. 여전히 책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좋은 글들을 자주 옮겨 적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봐도 여전히 좋은 글이고, 여전히 가슴 셀레이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쨋든 우리의 삶도, 우리 매일 매일의 일상도, 자기자리를 잘 지키며 살아가는 것도, 삶이란 여행의 한부분이 아닐까하는 생각 문득 해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소중한 매일 매일의 '일상'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나를 느끼고, 또 다른 새로움과 기쁨을 만들어나가고. 그렇게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오늘의 나를 어느 책의 제목처럼 "지구별 여행자"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멋진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떠남만이 여행은 아닐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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