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i am/Essay
[Essay] 허기.
pilgrimten
2018. 9.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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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그랬듯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시간은 너무나 많았었다. 그리고 이렇게 너무나 많은 시간은 오히려 나에겐 흠이 된 건지도 모른다. 산책할 시간도 있었고, 차 마실 시간도 있었고, 여행할 시간도 있었고, 빈둥거릴 시간도 있었고, 책 볼 시간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생활인지도 모른다. 나서려는 것도, 튀려고도 하지 않고, 더욱더 천천히 사람들 한 발짝 뒤에서 그림자처럼 걸어 갔었다. 그렇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뭔지 모를 허기가 늘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땐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난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자꾸 다른 것들로만 채워 나갔다. 그러나 그 어떤 것들도 포만감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늪으로 계속 빠져 드는듯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득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도 없어지고,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것 같고, 무관심해지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기뻐하지도 않고, 이렇게 허기는 날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 그때는 결국 그 허기가 날 이겨 버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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